
권순관 개인전 《다면체적 물체 Polyhedral Masses》: 매향리 프로젝트
권순관 작가의 《다면체적 물체 Polyhedral Masses》 매향리 프로젝트는 과거 미군의 사격장으로 쓰였던 매향리 평화기념관을 단순한 기억의 보관소가 아닌, 시공간을 초월한 ‘생태적 존재론의 아카이브’로 재구성한다. 이 전시는 역사를 과거의 우발성을 소거하고 목적론적 필연성으로 직조해낸 완결된 체계로 규정하는 대신, 사건과 이미지, 기억과 허구가 끊임없이 교차하고 접합하는 다면체의 구조로 파악한다. 전시 공간 전체는 종교적 제단과 ‘성체 안치기(Monstrance)’의 구조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건축적 뼈대로 조직된다. 이는 역사가 구성되는 방식을 은유하며, 이질적인 요소들이 끊임없이 접속하는 기계적 배치(Agencement)로 작동한다.
■ 다목적실: 맹목적 순환의 광장과 생태적 개체
성체 안치기(Monstrance)를 상징하는 원형 금속판 아래로 ‘사람들의 광장’이 펼쳐진다. 과거 매향리에 투하된 포탄의 금속성 외피를 연상시키는 재료로 제작된 이 원형판 아래에는 이수근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된 자료와 판결문, 국가 권력에 의해 ‘간첩’으로 지목되거나 규정된 인물들의 사진과 아카이브가 놓인다.
매체 스스로를 해설하는 서창부(Parabasis)의 독백적 방식을 바탕으로 폭력의 파편들은 숭고의 도상으로 역전되고 의미를 상실한 역사의 파편들은 기계적으로 조립된다. 공간에 놓인 오브제와 아카이브들은 고정된 ‘상태적 현존’에 머물지 않고, 외부 공간의 물성 및 환경과 충돌하며 현실의 피부 위에 ‘존재의 극장’을 개설하려는 유기적이고 생태적인 개체로의 확장을 암시한다.
■ 사격통제실: 오작동하는 독신자 기계와 감응(Affect)의 장
과거 사격을 지휘하던 통제실은 폐쇄된 기계적 구조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카프카적 미궁으로 변모한다.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던 문래예술공장에 놓여 있던 성체 안치기(Monstrance)의 모듈레이터(modulator)가 이곳으로 이식되어, 여러 방에 걸쳐 목적 없이 배회하는 파편적 장면과 소리 오브제들을 발생시킨다.
건물 전체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개념처럼 외부와 교류하며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유기적 장치라기보다, 오직 기계 자체의 ‘작동’만을 무한히 반복하는 폐쇄된 회로이자 거대한 ‘독신자 기계(Bachelor Machine)’로 오작동한다.
동시에 이곳은 지각의 정치학을 넘어선 ‘감응(Affect)의 장’이다. 관객의 그림자나 움직임 같은 환경적 변수는 기계 장치에 기입되고, 관객은 자신의 존재가 광학적 파편 및 유령적 데이터와 뒤섞이는 신체-이미지를 경험하게 된다.
■ 헬륨저장소: 다성적 기억의 교차로와 데이터 유령론
텍스트 작업 〈어느 날 갑자기〉가 설치된 이 공간에서는 실존 인물과 가상의 인물이 교차하고 관계 맺으며 분열한다. 상상과 허구, 사실과 믿음이 얽히는 가운데 서사는 특정한 결론을 향하지 않고 무한히 맴돌며 기계적 반복을 수행한다. 이러한 서사의 진동은 존재론적 변형을 이끄는 ‘기계적 유령론(Machinic Hauntology)’의 탐구로 이어진다. 미래에 망실될 데이터를 가상의 ‘선제적 아카이브’로 물질화하고, 피터 오스본(Peter Osborne)의 동시대성에 관한 시간론처럼 현재를 미래의 관점에서 재구성함으로써 이 공간은 시간과 기억이 뒤섞인 장이 된다.
■ 댄스홀: 이 공간의 작품 《섬(an Island)》은 과거 미군 폭격기의 가상 표적이었던 매향리의 농섬을 연상시킨다. 오랜 시간 폭격에 노출되어 부서지고 사라져간 섬은 소멸의 흔적을 현재에 드러낸다. 시간과 기억의 구조는 시각적 매체로 전환되어,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에 사라져 있을 섬의 모습을 현재에 가시화한다.
■ 망각된 역사를 다시 상상하는 ‘의식적인 목격자’
결과적으로 이 세계는 고정된 물리적 구조를 넘어, 아카이브의 환영이나 관객의 신체적 개입과 같은 환경적 변수를 흡수하는 ‘살아 있는 기술적 개체’을 지향한다. 세속적 폭력의 역사와 종교적 숭고함이 중첩된 전시장 전체는 다층적인 미학적 실험실이다.
관람객은 과거의 고통을 바라보는 분리된 관찰자나 수동적인 감상자에 머물지 않는다. 이 폐쇄된 세계 안을 함께 배회하며 주객의 구분이 사라진 다면체적 존재의 일부로 편입되는 실존적 마주침을 겪고, 종국에는 불완전한 흔적을 해석하며 망각된 역사를 다시 상상하는 ‘의식적인 목격자’로 초대된다.
■ 작가 소개
1973년 출생. 상명대학교 사진학과에서 사진을 전공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에서 사진.영상.설치미술 등 매체 실험 전반을 폭넓게 탐구했다. 그는 일찍이 대안공간풀, 성곡미술관, 경희대미술관, 학고재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주목받았고, 최근에는 서울문화재단 문래예술공장(2025), 부산 space bv(2026)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다수의 국내외 기획전에 참여하며 작업의 범주를 꾸준히 확장해왔다.
2007년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한국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같은 해 5·18 기념재단의 요청으로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작업을 수행하며 역사적 현실과 이미지의 간극을 다루는 시각적 언어를 보다 명확하게 구축했다. 이후 2007–2008년 쌈지스페이스 스튜디오 프로그램과 2009–2010년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다양한 현장 기반 리서치를 진행했다.
2015년 자그레브 국립현대미술관 아티스트 레지던스에 참여하며 코소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 발칸 지역에서 작업했다. 2018년 학고재에서 열린 개인전 〈부초와 뼈 The mulch and bones〉는 작가의 장기적 성과를 집약한 전시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울산현대미술제,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ław) 등 국제 무대에서 아시아 사진가들과 함께 전시하며 활동 범위를 넓혀왔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브뤼셀·오타와 등지에서 서울을 소개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또한 전쟁 후 폐허가 된 도시와 자카르타 공장, 아쌈의 고원지대 등 여러 장소를 탐방하며 이미지와 현실의 균열, 그 사이 공간을 탐구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권순관은 장소 탐색을 기반으로 한 장기적 리서치와 매체 실험을 중심으로, 매 전시마다 새로운 방식으로 시각적 구조를 확장해온 작가다.
■ 전시 개요
● 전시기간: 2026. 9. 22.(화) – 11. 1.(일)
● 운영시간: 10:00–18:00 / 매주 월요일 휴관(추석당일 9.25, 공휴일 익일 10.6 휴관)
● 장소: 매향리 평화기념관 (경기 화성시 만세구 우정읍 고온리안길 24-46)
● 주최: 화성시
●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역전시활성화
● 주관: space bv · 매향리평화기념관
* 자료제공: space bv
■ 공간 안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