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 개인전 │ 레디, 액션!!

정민우 개인전 《레디, 액션!!》

평면, 흐름으로 전진하다: 정민우가 그린 신경다양성의 리듬

“레디, 액션!” 여름 한가운데 문을 여는 이번 전시는 제목부터 관객의 몸을 들썩이게 한다. 영화 현장에서 촬영을 시작하는 이 구호는 평면 회화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도 같은 신호를 보낸다. 화면 속 도상(圖像)을 더 이상 ‘정지된 것’으로 두지 않겠다는 작가, 그리고작가와 함께 한 이들의 의지가 이 짧은 외침에 모여 있다. 정민우는 지난 몇 년간 붓과 아크릴펜, 그리고 아이패드를 오가며 자신만의 경쾌한 이미지 아카이브를 구축해 왔다. 그 과정에서 그는 ‘머릿속에 저장된 완성본을 그대로 꺼내 놓는’ 기억형 회화의 안전지대를 조금씩 흩뜨려 왔고, 이번 전시는 그 실험에 대한 중간 웨이 포인트(way point)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지점은 평면 회화 20점과 모니터 속 무빙 이미지 10점이 촘촘히 교차하는 동선이 될 것이다. 전시장에서 우선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동물 시리즈>. 검은 윤곽선과 대담한 원색으로 단순화된 동물들은 이번 전시에서 움직임과 시간을 함께 엮어나가며 어떠한 의미를 지니게 될 지에 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지면을 밀어 올려 생성된 짧은 루프, 미세한 떨림, 리듬감 있는 반복은 GIF 문화가 지닌 중독적 호흡을 호출하고, 관객의 시선을 숏폼(short-form) 영상처럼 붙잡아 두며 작가의 시선과 관심이 집결된 동물들을 각자의 기억에 안착시킬 것이다. 그의 동물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영화 캐릭터의 코드를 얻어 사회적 알레고리로 재포맷되며, 팝 아이콘이 될 잠재력까지 실험한다.

작가의 예술 영역에 있어서 새롭게 펼쳐지는 이 장에서 새로운 번역과 재현 과정이 펼쳐진다. 그의 디지털 드로잉은 아이패드 화면에서 시작되어 프린팅된 평면과 움직임이 펼쳐질 LED 화면상으로 전이된다. 특히 새롭게 선보일 영상매체는 애니메이션 감독 성준수와의 협업을 통해 자폐 스펙트럼 특유의 리듬감과 작가만의 조형언어가 프레임 단위로 시간과의 춤으로 펼쳐진다. 과거 그의 작업이 ‘기억된 완성본을 꺼내 놓는’ 재현 행위에 가까웠다면 〈레디, 액션!!〉은 정적 매체 위에 시간성을 얹어 ‘흐름’을 다루며, 성준수 감독과의 협업은 일련의 과정에 대한 연대이고 연계이다. 이 관점과 관점, 번역과 해석의 연계 과정은 정민우 작업의 새로운 확장성의 탐색이며 확인지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 있어 그에게 가장 중요한 변화는 ‘관점의 전환’이다. 이전까지 그의 회화는 대상의 외형을 포착해 작가 스스로가 가진 원형에 근거하여 재현하거나, 일상의 소비 사물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정물화의 형식으로 풀어내는 순간의 축적이었다. 이번 〈레디, 액션!!〉에서는 회화라는 정적 매체가 애니메이션의 시간성을 얹힘으로써 ‘순간’이 아닌 ‘흐름’에의 여정을 시작한다. 또한 관객이 드로잉 워크숍에 참여해 완성된 이미지를 전시장 한편에 설치하도록 기획되면서, 창작 주체 역시 작가라는 단수에서 관객과의 연결로 확장되며 새로운 관계망에 대한 시도를 포섭한다. 전시장을 나설 때 ‘정민우의 세계’는 작가 · 관객 · 캐릭터 · 무브먼트가 뒤엉켜 완성되는 살아 있는 세트장처럼 작동하며 회화적 프레임을 넘어선 행위의 장이 된다.

여기에 기술과 장애예술이 교차하는 오늘의 조건이 겹친다. 최근 문화예술계는 스마트폰 이후 일상화된 디지털 매체와,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속한 비물질 교류 속에서 기술과 예술의 융복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동시에 배리어프리(barrier‑free) 담론이 확산되며, ‘접근권’을 넘어 창작과 향유 전 과정에 포괄적 접근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됐다. 2년 전 시작된 <퓨처 와이드 오픈(Future Wide Open): 신기술 기반 장애예술 창작실험실>은 장애예술과 이러한 두 흐름이 만나는 구체적 현장이다. 장애·비장애 예술인이 같은 무대에서 기술 전문가와 협업해 작품을 실험·공유하는 플랫폼은 장애예술을 복지적 지원의 틀에 가두지 않고 현대미술의 실험성과 시장 논리 안으로 위치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정민우의 이번 시도는 그 흐름과 맞물린다. 그는 자폐 특성을 가진 창작자로서 종종 ‘반복’과 ‘패턴’으로만 호명돼 왔지만, 지난 6년간 회화적 어휘를 끊임없이 다양화해 왔다. 이번 전시는 그 확장을 한눈에 조망하게 한다. 반복과 루프는 진단적 편견이 아닌, 디지털 시대가 공유하는 이미지 소비 방식—스크롤, 리프레시, 짧은 영상—과 공명한다.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 만들고 확장한 ‘지각의 알고리즘’은 이제 현대미술이 활용할 수 있는 미적 자원이자 관점이 되었다. 장애예술과 기술매체, 그리고 현대미술은 이 지점에서 새 관계를 맺는다: 보호·치료의 프레임을 넘어선 ‘공동 제작·공동 향유·공동 시장’의 가능성이다. 이번 전시는 그 물음을 밝고 경쾌한 톤으로 던지며, 답변에 대한 환기를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과제 역시 분명하다. 하드웨어-외부 전문가 의존적 무빙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다룰 것인가, 즉 새로운 방식에 대한 작가 주도의 협업이 아닌 외부적 의뢰로서의 의존성이 남는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평범한 작업실과 가족의 지원으로 쌓은 안전지대를 발판 삼아 작가는 ‘보호’ 대신 ‘협업’과 ‘시장’에 대한 자립의 서사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 생태계가 이미 세계 자체와 맞먹는 규모로 확장된 오늘, 그는 그 속으로 진입해 자신의 창작 리듬을 증폭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전환점을 마주했다.

결국 〈레디, 액션!!〉은 하나의 선언이다. 정민우는 더 이상 ‘완성본을 꺼내 놓는’ 화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평면 이미지를 깨워 시간 속으로 밀어 넣고, 그 과정에서 관객을 동등한 플레이어로 초대한다. 스튜디오와 전시장, 화면과 모니터, 일상과 팝컬처, 장애예술과 현대미술 사이에 팽팽히 걸린 줄 위에서 그는 경쾌하게 균형을 잡는다. 촬영 구호는 이미 울렸다. 그러니 큐 사인을 들은 우리는 이제 답해야 할 차례다. 정지 버튼을 누르지 말 것. 이 전시는 시작 신호와 함께 움직이는 중이며 ‘액션’은우리의 몫이다.

– 허대찬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aliceon.co.kr 편집장)

■ 전시개요

● 작가명 : 정민우
● 전시명 : 레디, 액션!!
● 전시기간 : 2025. 07. 23(수) – 08. 02(토)
● 관람시간 : 월 – 토 11:00 – 18:00, | 점심시간 13:00 – 14:00
● 장소 : 라흰갤러리(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50길 38-7)

* 자료제공: 노화랑

■ 공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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