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승희 개인전 《새벽, 여백을 열다》
노화랑은 오는 7월 16일부터 30일까지 판화가 강승희의 개인전 <새벽, 여백을 열다>를 개최한다. 노화랑과는 2021년 개인전 이후 4년 만에 함께하는 전시이며, 동판화라는 전통적인 매체를 통해 시적이고 서정적인 화면을 구축해 온 작가의 신작을 소개한다.
40여 년간 동판화에 천착하며 ‘먹을 다루듯 동판을 새기고, 수묵화를 그리듯 판화를 찍어낸다’는 평가를 받아온 강승희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새벽의 고요한 풍경을 통해 기존의 밀도 높은 화면에서 한층 더 간결하고 절제된 표현으로 나아가며, 내면의 깊이를 담아낸 신작들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 <새벽, 여백을 열다>는 작가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강승희에게 ‘새벽’은 밤과 낮, 삶과 죽음, 잠과 깨어남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의 시간’이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흐릿한 이 시간은, 보이지 않는 감정을 담는 그릇이자 ‘비시간’의 상태로 존재한다. 고충환 미술평론가가 “예술은 암시의 기술이며, 회화는 가시적인 것을 통해 비가시적인 것을 화면에 들여오는 작업”이라 말했듯, 강승희의 판화는 여백을 통해 바람과 물, 공기와 기운 같은 비물질적 감각을 암시한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이전보다 더욱 간결해졌는데, 중첩된 이미지와 풍경의 디테일한 묘사 대신 최소한의 형태와 선으로 감정과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새벽녘의 바다와 강, 어둠 속 희미한 불빛, 하늘과 수면의 경계가 사라진 풍경 속 ‘그려지지 않은 여백’이 더 강조되는 작품들도 많은데, 작가는 단순히 비워둔 것이 아니라, 숨결이 드나드는 통로이며, 밀도 높은 감각을 사유하는 공간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강승희의 판화 방식은 기법적으로도 한국 동판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다. 1990년대 초반, 국내에서 동판화에 대한 인식과 기술적 기반이 아직 미비하던 시기부터 그는 꾸준히 동판 기법을 연구하며 자신만의 작업 방법론을 발전시켜 왔다.
이번 전시의 신작들은 주로 ‘아쿼틴트 에칭’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동판에 방부막(그라운드)을 얇게 입힌 뒤, 직접 제작한 붓과 니들을 사용해 선과 점의 밀도를 조절하며 이미지를 새긴다. 이후 판을 산에 담가 부식시키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명암의 농도와 질감을 섬세하게 조율해 나간다. 이렇게 완성된 화면은 종이에 깊이 스며든 잉크의 질감을 통해 동양화의 발묵법을 연상시키는 깊이감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표현의 제약이 많은 동판화라는 매체 안에서도, 그는 먹의 농담을 구현해 내며 물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업을 보여준다. 이러한 작업은 장인적 완성도는 물론 회화적 감수성을 동시에 갖춘 강승희 특유의 예술 세계를 드러낸다.
강승희는 동판화라는 장르의 한계 안에서 동양적 정서와 미감을 실현해 낸 드문 작가다. 오카야마 국제판화비엔날레 대상(1991),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1991),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 대상(1998) 등 국내외 주요 상을 수상했으며, 서울, 워싱턴, 도쿄 등지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대영박물관, 일본 와카야마 근대미술관, 중국 흑룡강성 미술관 등 세계 유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추계예술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한국 동판화의 기틀을 다져온 그는, 말 그대로 한국 동판화의 개척자이자 실천자라 할 수 있다.
현대미술 시장에서 동판화나 수묵화는 종종 전통적인 매체로 분류되며,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비주류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강승희의 작업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의 시대 속에서 그는 느리고 조용한 사유의 방식을 통해 본질적인 감수성과 시각적 울림을 회복하고자 한다. 판화라는 간접화법을 통해 오히려 더욱 직접적인 감정의 떨림을 전하는 그의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운과 기류까지 섬세하게 끌어낸다. <새벽, 여백을 열다>는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실현해 온 판화 작가의 지난한 여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 전시 개요
● 작가명: 강승희
● 전시명: 새벽, 여백을 열다
● 일정 : 2025. 07. 16 – 07.30
● 관람시간 : 10:00 – 18:00 (공휴일 및 일요일 휴관)
● 주소: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 노화랑
● 이메일: hello@rhogallery.com
● 홈페이지 : https://rhogallery.com
● 문의 : 노화랑 (☎ 02. 732. 3558)
● 주최 : 노화랑
* 자료제공: 노화랑
■ 공간 안내